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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풍요로운 독서

독재에 대한 책과 영화, 1984 + 브이 포 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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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1948년에 쓴 1984는 굉장히 유명한 책이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이 많진 않다. 나도 내용은 알지만 읽은 적은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영감을 받았다는 [브이 포 벤데타]를 보며 함께 읽었다.

1984는 전체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윈스턴 스미스를 주인공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오세아니아 국가(?)는 빅 브라더를 수장으로 한 독재체제로 고위직인 내부당원과 하위급인 외부당원, 그리고 노동자인 프롤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집단의 존속을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라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고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희망적 결론을 맺는 다른 책/영화와 비교했을 때 1984는 굉장히 암울하지만 그만큼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 디스토피아

독재체제에 반항적 태도를 갖고 있는 윈스턴 스미스는 은밀하게 활동하는 '형제단'을 알게 되지만, 결국 사상경찰에 의해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세뇌당하게 된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연인까지도 배신하고 빅 브라더를 옹호하는 사람이 되는데, 이걸 현실 세계에 적용하면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에서 개개인의 주체성을 잃고 휩쓸려가는 군중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공략하는 SNS 마케팅 시스템에서 사고 기능을 잃은 채 결제 버튼을 누르고 가짜뉴스에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의 '주체적 사고'란 무엇일까? 어떻게 그걸 구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매트릭스]가 참 많이 와닿았다. 1997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이렇게 미래사회와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쩌면 [매트릭스]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발전할수록, 시스템이 진화할수록, 더이상 사고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인간이 에너지를 최소화하게 되면서 내부적으로 생기는 '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 사고를 규정하는 언어

1984에서 무릎을 탁 친 순간이 있는데, 그건 바로 독재를 위해 '신어'를 만든 장면이었다. 독재자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구나. 과거부터 민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언어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식민시대에도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던가? 언어는 곧 사고체계를 일컫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신어'라는 걸 만들어서, 사고를 단순화시킨다. 예를 들어, '아주 좋다'를 splendid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good을 변형시켜 very good 등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단어가 필요치 않다. 단어가 단순화될수록 사고도 단순해질 것이다. 그러면 의식의 범주도 좁아질 것이다. 

이걸 또 현실에 적용해보자. 나이가 들수록, 책을 덜 읽을수록, 공부를 덜 할수록, 어휘력이 부족해지는 걸 느낀다. 머릿속에서 단어가 맴돌기만 하고 입밖으로 튀어나오질 않는다. 이건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사고의 폭이 좁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매번 같은 단어만 쓰니,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질 못한다. 그래서 평소에 안 쓰던 단어를 쓰려고 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새로 배운 지식을 활용하려고 한다. 그렇게 꾸준히 머리를 써야 나이가 들어서도 생생하고 말랑한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듯하다. 유연한 머리에서 유연한 행동이 나온다. 

1984에서 말하는 '신어'는 결국 스스로 경계해야 되는 문제인 듯하다. 

3) 빅 브라더의 존재, 혁명의 대상은 누구인가?

여기엔 늘 시민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가 등장한다. 어디서나 늘 보고 있는 존재.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는 '빅 브라더'. [브이 포 벤데타]에는 빅 브라더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영국의 수장인 독재자는 TV에서 얼굴을 내밀고 직접 발언하고 통제한다. 명확한 대상이 있기에 영화 내에서는 이 수장을 제거하여 혁명을 완성하고자 한다. 

(참고로, [브이 포 벤데타] 마지막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영화 초반과 후반에 차이코프스키의 1812 Overture가 나오는데 음악과 겹치면서 감동이 북받쳐 오르니 꼭 보시기를 바란다.)

youtu.be/VbxgYlcNxE8

 

하지만 1984에는 빅 브라더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기에 오히려 독재 시스템과 시스템 유지를 위해 일하는 사람 개개인이 빅 브라더의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의 동료가, 나의 자녀가 고발자가 될까 늘 불안에 떠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유신체제일 때도 비슷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빅 브라더'의 존재 또한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존재할 때 진정한 '독재'가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깨어있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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